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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부산엑스포 무대가 될 부산항 북항의 모든 것

2024.01.05
사회
북항의 발자취는 곧 부산의 역사다. 북항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등 역사의 변곡점마다 제 역할을 다하며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었다. 147년 전 동래부의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북항은 오늘날 국내 최대, 세계 7위 규모의 항만으로 성장했다. 이제 북항은 다음 도약을 꿈꾼다. 금단의 땅이었던 재래 부두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친수 공간이자 지역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다. 또 2030부산엑스포 무대로 예정되어 굴곡진 역사와 눈부신 미래의 공존을 꿈꾼다. 북항의 역사, 그리고 엑스포 유치의 의의를 짚어봤다.


부산항 지도. 이지민 에디터 mingmini@

■북항은 어떤 곳

원래 북항은 부산항 그 자체를 뜻했다. 북항 안에 있는 1~4부두가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개항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곳이 부산항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산공동어시장이 있는 남항, 국내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신항 등이 들어서며 부산항의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이에 부산항은 부산 항만 시설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됐고, 오늘날 북항은 부산항 1~4부두와 55보급창이 있는 5부두, 자성대부두, 우암부두, 감만부두, 신선대부두 등을 가리킨다.

부산항의 규모와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부산항 전체 면적은 2억 1892만㎡, 해안선 길이는 380km에 달한다. 선박 202척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다. 그만큼 오가는 물건도 많다. 부산항의 지난해 물동량은 2207만TEU로 세계 7위 규모다. TEU란 20피트(약 6.1m) 컨테이너 하나를 뜻하는 단위다.


1958년 부산항 전경. 출처: 부산세관박물관(촬영 김두순)

■역사의 부침을 묵묵히 떠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북항은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부침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맺으며 북항은 국내에서 처음 외세에 문을 연 항구가 됐다. 당시 조선은 국제법을 알지 못했고 운요호 사건 등 무력 시위에 시달리자 무관세를 허용한다. 40년간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며 북항을 연구한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은 “일본인이 무관세 조항을 이용해 조선의 쌀과 콩을 쓸어가면서 부산항은 경제 수탈의 통로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일제는 북항을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1914년 북항을 일본의 무역항으로 지정하며 1~4부두를 차례로 건설했다.


1981년 부산여객부두와 제1부두 전경. 출처: 부산세관박물관

■전쟁을 넘어 산업화를 이끌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은 북항을 또다시 역사의 파도 속에 밀어 넣었다. 1950년 피란수도가 된 부산의 항구에는 고향을 등진 피란민의 눈물과 성토가 들끓었다. 동시에 미군과 유엔군이 첫발을 내디딘 곳이자 국제 사회의 원조가 쏟아진 희망의 항구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1960년대부터 북항은 발전을 거듭한다. 1974년 세계은행(IBRD)에 받은 차관으로 개발공사가 시작돼 양곡 전용 부두인 5부두, 특수화물 전용 부두인 8부두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이어 1998년까지 1·2부두 개축,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건설 등 쉼 없이 확장한다. 이 시기 북항은 한국 산업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부산은 70~80년대 세계 최대의 신발 생산지였고 각종 공산품이 부산항을 거쳐 수출됐다.


부산항 북항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146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100년 넘도록 북항은 시민이 밟을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북항 일부 구간이 친수 공간으로 개방되며 146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2006년 문을 연 부산신항에 항만 물류 기능을 넘기고, 북항은 친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북항 재개발 사업’ 덕분이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발간한 ‘부산항북항재개발사업백서’는 “컨테이너 화물이 늘어나며 북항의 설계 하중이 초과됐다”며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수변 공간 발전을 막아 재개발 목소리가 높았다”고 사업 배경을 설명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은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발전 토론회에서 처음 제안했다. 2006년 마스터플랜 수립을 거쳤고 2008년 작업장 조성 공사로 첫 삽을 떴다.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정하며 사업 규모가 크게 늘었다. 1~4부두와 자성대부두였던 기존 계획에서 우암부두·감만부두·신선대부두까지 확장한 ‘북항 통합개발 마스터플랜’이 2020년 공개됐다.



■북항 재개발 어디까지 왔나

북항 재개발 사업은 현재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1~4부두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지 등(155만㎡)이다. 정부와 부산시, 부산항만공사가 2조 854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올 3월 주요 기반 시설이 완성됐다. 친수 공간으로 개방된 곳도 이 구간이다. 2단계 부지는 자성대부두, 부산역·부산진역CY 등 228만㎡다. 국비 3043억, 민자 3조 7593억 원을 투입한다. 부산시는 내년 7월 착공을 목표로 전략 수립 용역에 들어가는 등 절차를 밟는 중이다. 특히 2단계 부지는 엑스포의 개최 예정지로 2030년까지 준공 예정이다. 나머지 3단계 부지는 7~8부두와 우암부두, 감만부두를 아울러 규모가 310만㎡에 달한다. 지난달 3일 부산시는 3단계 재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30부산엑스포 전에 55보급창과 8부두를 신선대부두 끝단으로 이전한 뒤, 3단계 재개발 사업을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로고의 퍼즐을 아이가 완성시키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이 3개월도 남지않았다. 2014년 한국 최초 등록 엑스포 유치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향한 행보도 10년여 만에 결실을 거두길 염원한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북항, 엑스포로 도약한다

부산이 2030엑스포를 유치한다면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과 3대 메가 이벤트를 모두 치른 세계 7번째 국가가 된다. 대전, 여수에서 개최된 엑스포는 ‘인정엑스포’다. 북항 재개발과 가덕신공항 건설로 지역 경제 활성화도 기대된다.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에 맞추려면 2단계 공사가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북항 재개발 1단계로 예상되는 경제 파급 효과만 31조 5000억 원이다. 또한 전 세계에서 몰릴 엑스포 방문객을 위해 24시간 관문 공항인 가덕신공항 건립도 엑스포 시계에 맞춰 조기 개항이 추진된다. 이 관장은 “바르셀로나, 밀라노 같은 도시는 엑스포 유치를 통해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 부산의 산업 지형이 뒤바뀌고 우리나라 가 도약할 엄청난 기회”라며 “질곡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북항은 엑스포가 유치되면 눈부신 미래로 꽃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상배·남형욱 기자 sangbae@busan.com
이정 PD luc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