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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영 전 하야리아 시민공원 범시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

2024.01.05
인터뷰 사회
오늘날 부산시민공원은 매년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발길 하는 지역 랜드마크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민의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이유로 지역민의 삶터이자 비옥한 농지였던 이곳 부지를 강탈했다. 일제는 필요에 따라 공장지대로, 경마장으로, 병참 기지로 이용했다. 광복 후에도 미군이 오랜 기간 점유하며 출입이 불가했다.

그렇게 한 세기 동안 외부인의 손에 놓여있던 부산시민공원은 마침내 2014년 개장하며 진정한 시민의 땅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군에게 기지 이전을 촉구하고,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돼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해야 했다. 시민단체로서 그 활동의 중심에 섰던 허운영 전 하야리아 시민공원 범시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허운영 부산 당감동 어린이도서관장

■ 시민운동 계기로 어린이도서관 세워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어린이도서관 ‘동화야 놀자’. 허 전 위원장을 만난 곳은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그가 이곳을 20년 넘게 운영 중인 관장이기 때문이다.

1993년 시민사회에 몸을 담았던 그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주목했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큰 이슈는 ‘하야리아 기지 반환 운동’이었다. ‘하야리아(Hialeah)’는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과 범전동에 걸쳐 16만 평에 달하는 미군기지 이름이었다.

“저는 원래 부산 서구 대신동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야리아 반환 운동 시민대책위원회에서 역할을 맡게 되면서 하야리아 부대 근처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이곳 당감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문화 시설이 아주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당감동은 새로운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며 빈부 차이가 눈에 보였다. 시민운동을 하던 그는 문화로 하나 되는, 차별 없는 마을을 꿈꾸며 사비를 털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후 23년째 그는 묵묵히 도서관을 이끌고 있다.


2001년 6월 시민단체가 미군기지 철거 시위하는 모습. 부산일보DB

■ ‘양키 고 홈’ 대신 ‘시민공원’ 외치다

“1993년 이전부터 하야리아 기지 앞에서 ‘양키 고 홈’, 그러니까 ‘미군은 돌아가라’ ‘우리 땅을 돌려달라’는 목소리는 시민단체 중심으로 계속 나왔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왜 굳건한 한미동맹을 깨뜨리려 하느냐’ ‘대책 없는 반미 운동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았죠.”

시민들에게 공감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를 고민하기 위해 1993년 11월 부산 동구 한 노인복지관에서 젊은 학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워크숍을 연다. 하야리아 기지는 더 이상 군사적인 용도가 없기 때문에 시민이 돌려받아야 한다는 결론은 이의가 없었다.

“그럼, 반환을 받아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끝에 부산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자고 얘기했습니다. 이후 1년 3개월 정도 뜻을 함께할 시민단체를 모았고 1995년 3월 6일 ‘하야리아 등 부산 땅 되찾기 범시민대책위원회’를 창립하게 됩니다.

‘하야리아 기지를 반환받아 시민공원을 조성하자’는 구호에 시민들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부산 면적의 절반 이상은 산지다. 넓은 평지 공원에 대한 시민들 갈증이 증명된 셈이다. 단순히 ‘미군 떠나가라’고만 했다면 이런 시민 호응은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허 관장의 생각이다.

“‘부산에는 평지 공원이 하나도 없다’ ‘우리도 공원다운 공원을 가져보자’는 성토가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 하야리아 기지 주변을 1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인간 띠 잇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죠. 2001년 부산시도 뜻에 동참하며 토지 계획상 하야리아 기지를 공원 구역으로 지정하게 됩니다.”


2010년 10월 05 하야리아 기지 전경. 부산일보DB

■ 150만 시민 결의 모으다

하지만 2004년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바로 미군이 경기 북부에 있는 동두천, 의정부, 춘천 등에 있는 미군 부대와 한강 이내 미군 부대를 모두 평택으로 모아 합치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하야리아 기지도 대상이었다.

“미군 기지를 옮기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국방부는 반환받는 미군 기지 부지를 민간에 팔아서 그 돈으로 평택 미군 기지를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민간에 부지를 팔게 되면 공원은커녕 또다시 아파트 숲만 들어설 게 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의 3개월을 국회에 살면서 국회의원들 설득에 나섰습니다.”

여러 노력 끝에 2006년 부산시가 하야리아 기지 부지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다. 평택으로 이전하는 미군 기지 비용은 기본적으로 미군기지를 팔아서 재정에 사용하지만, 공원처럼 공공 용도로 이용할 때는 지자체에 무상 공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국방부가 이걸 100% 무상 공여가 아닌 30% 지원으로 내용을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100만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부산 시민이 진즉 이용했어야 할 땅을 100년 동안 빼앗겼는데 돌려받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은 150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하야리아 부대 반환식 모습. 부산일보DB

■ 토지 오염 정화를 떠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06년 8월 15일 하야리아 기지는 폐쇄됐다. 하지만 공원이 되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오랜 기간 미군이 점유한 탓에 심각하게 오염된 토지를 정화해야 했던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기지를 반환할 경우 105일 동안 환경 오염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105일 동안 환경 조사를 70%밖에 못 끝낸 거예요. 우리 정부는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군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를 유지했죠.”

기름이 오히려 넓고 얕게 오염되어 있으면 흙을 파내면 되지만, 문제는 굉장히 깊게 오염이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전포천 쪽에 심은 나무는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는 게 허 관장의 설명이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가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다. 허 관장은 이 대목이 부산시민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아쉽다고 지적했다. ‘나쁜 선례’가 되는 바람에, 하야리아 기지뿐 아니라 전국 미군 기지에서 발생한 토지 오염 정화 책임을 우리나라가 줄곧 떠안는 모양새가 됐다고 덧붙였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SOFA가 규정한 대로 미군이 책임진 게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하야리아 기지도 결국 미군이 질질 끄는 걸 보다 못한 부산시가 ‘책임은 우리가 질 테니 빨리 돌려만 줘’라고 해버린 거죠. 토지 오염 시킨 미군이 정작 정화 책임은 우리 정부에 넘긴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허운영 부산 당감동어린이도서관장

■ “공원 만든 건 바로 시민”

환경 오염 정화를 거쳐 2010년부터 시민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부산시민공원은 2014년 5월 1일 정식 개장했고 시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이면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허 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미군에게 열쇠를 받았을 때를 꼽았다. 오랫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곳이 마침내 시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00년 치욕의 역사를 미래의 역사로 바꿨다는 자부심이 그의 말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공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들도 시민공원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는 걸 보면 그저 흐뭇해져요. 이렇게나 넓은 평지 공원이 부산에 생겼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이용하시는 분들 모두가 시민공원의 역사를 꼼꼼히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대신 공원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민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 기억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이상배 기자(sangbae@busan.com)
남형욱 기자(thoth@busan.com)